책과 커피,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소개
착취와 차별과 극소수의 지배가 없는 사회를 꿈꾸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합니다. 마르크스주의를 행동의 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영어로 된 이론과 소식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으로도 그 실현 과정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Life is beautiful. Let the future generations cleanse it of all evil, oppression, and violence, and enjoy it to the full.
The Testament of Trotsky, 1940
오늘날 서구 사회에 만연하고 한국에서도 스멀스멀 퍼지고 있는 인종 차별의 한 형태인 ‘이슬람 혐오’에 맞서 싸우는 데에 관심이 많고, 이슬람교 자체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는 이제껏 한 번도 종교를 믿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마르크스주의자이기에 변증법적 유물론자이고 따라서 당연하게도 무신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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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설명하면 병원균의 독성에는 일종의 모자가 씌워져 있다. 숙주가 다른 개체에게 병을 옮기지 못할 정도로 숙주를 손상시키는 것은 바이러스에게도 피해야 할 일이다. 연쇄 감염을 일으키기도 전에 숙주가 죽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병원균이 다음 숙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더 빨리 알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지금의 숙주를 죽이기 전에 취약한 다음 숙주를 성공적으로 찾아낼 수 있으니, 병원균 입장에선 병독성을 키워도 된다. 전염이 빠르다는 것은 바이러스가 마음 놓고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취약한 숙주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게 병독성 진화의 핵심이다. 취약한 숙주의 공급이 끊기면 높은 치명률도 꺾이고 면역은 상승하며 결국 인플루엔자의 유행이 멈춘다.
그렇다면 바이러스와 숙주의 관계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달라졌기에 H5N1의 병독성을 그만큼 키운 것일까. 환경적 증거들은 집약적인 가금류 생산, 더 비판적인 용어를 쓰자면 '공장식 축산'을 지목하고 있다. 일라리아 카푸아와 데니스 알렉산더가 최근 세계의 인플루엔자 발생을 분석했는데, 인플루엔자 하위유형의 거의 대부분을 담고 있는 원천 격인 야생 조류들에서는 고병원성이 나타난 사례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다양한 저병원성 인플루엔자의 하위유형이 나타났고, 이것들이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가금류 개체군으로 들어갔을 때에만 병독성이 커졌다.
가금류는 농가 뒷마당에서 풀어 키우는 것과 산업적으로 사육되는 것으로 나뉜다. 수세기에 걸쳐 가정에서 키워 온 가금류는 새로운 병원성 인플루엔자에 걸리지 않은 반면에 산업적으로 사육된 가금류에서는 이같은 변형이 잘 나타났다. 그레이엄 등은 2004년 태국의 대규모 가금류 농장에서 뒷마당 사육장보다 H5N1이 발병할 확률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슷한 패턴이 다른 인플루엔자 혈청형에서도 반복됐다.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의 대규모 농장 가운데 5%에서 고병원성 H7N3 감염이 발생한 반면 작은 농장들의 감염은 2% 정도였다. 2003년 네덜란드에서도 17%의 산업형 농장에서 H7N7이 발병한 반면, 가정에서는 단 0.1%만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엔 소규모 가축들에게 변형된 바이러스가 퍼지지만, 산업형 축산이 강력한 병원균에게 이상적인 숙주를 제공해 준다. 단종생산으로 인해 거의 같은 유전형질의 가축이 많아지면서 전염을 늦출 수 있는 면역 방화벽들이 사라지고 있다. 규모와 밀집도가 커지면서 전염은 더 빨라진다. 그런 빽빽한 환경에서는 면역 반응도 떨어진다.
산업형 축산에서 인플루엔자의 병독성에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동물이 적당한 무게가 되면 곧바로 도축된다는 사실이다. 산업형 생산에서는 어린 연령대에 도축을 하기 때문에, 병독성이 진화하는 데 연료 역할을 하는 취약한 어린 개체들이 병원균에게 지속적으로 공급된다.
예를 들자면 생산 과정의 혁신으로 닭이 도축되는 연령은 60일에서 40일로 낮아졌다. 바이러스로서는 감염과 독성의 문턱에 빨리 도달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진 셈이다. H5N1의 발병을 줄이기 위해 대량 살처분을 할 때에도 이와 비슷한 궤적이 나타난다. 도축을 많이 할수록 바이러스에게는 병독성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이 높아지는 것이다. 인플루엔자는 점점 더 어린 동물들을 감염시키면서 병독성이 강해질 뿐만 아니라 더 건강한 면역 시스템을 가진 숙주 개체군에 대항할 수 있게 성장한다. 바이러스가 숙주를 바꾸는 간단한 변화만으로도 15~45세의 사람들을 겨냥한 치명적인 팬데믹이 나올 수 있다.
논평
병원균이 ‘독성은 낮아지고 전염성은 강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게 일반적이라는 설명을 자주 듣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모델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고, 이 글에서 롭 월러스는 ‘공장식 축산’ 때문에 병원균이 독성이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 책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은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쓰였지만, 롭 월러스는 지난 3월 독일의 반자본주의 월간지 ⟪마르크스21⟫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새로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발병이 개별적 사건이 아님을 이해하지 못하는(더 정확히 말하면 편리하게 무시하는)” 문제를 지적하며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을 불러오는 구조적 원인으로 자본을 지적한다. 그리고 대안으로서 “이 같은 위험한 병원체가 애초에 등장하지 않도록 식량 공급 체계를 사회화”하고 “환경과 경제를 갈라 놓은 물질 대사의 균열을 치유”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간단히 설명하면 병원균의 독성에는 일종의 모자가 씌워져 있다.”에서 ‘모자’는 ‘cap’의 오역인 듯하다. 원문은 이렇다.
“Simply put, to start, there is a cap on pathogen virulence.”
여기서 ‘cap’은 ‘한도’나 ‘상한선’ 정도로 번역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롭 월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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